기대 반, 근거 없는 확신 반으로 시작한 VIC 이야기
베트남 주식 투자를 처음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샀던 종목은 바로 VIC (VinGroup 빈그룹)이었어요.
그땐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왠지 모르게 "이건 무조건 잘 될 거야" 하는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투자 경험도 없고 베트남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었지만, 그저 직관만으로 선택했던 첫 종목이었죠.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단순했어요. 제가 당시 근무했던 곳이 빈콤센터였고, 회사 근처에서 보이는 건 전부 다 Vin그룹 계열이었거든요. 출퇴근길에 보이는 거대한 간판들, 쇼핑하러 가는 몰, 심지어 생필품을 사는 마트까지 모두 Vin 로고가 붙어있었습니다.
빈홈 센트럴 파크, 빈홈 골든리버, 빈마트, 빈스쿨, 빈펄... 베트남에서 Vin이 안 보이면 이상한 수준이었죠. 마치 한국에서 삼성이나 현대를 볼 수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그만큼 일상 곳곳에 VinGroup의 영향력이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당시 베트남은 부동산 붐이 한창이었고, VinGroup은 말 그대로 모든 걸 다 갖춘 거대 기업처럼 보였어요. 부동산, 리테일, 교육, 리조트까지...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진 기업이라 '다각화가 잘 되어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초보라도, 이 정도 브랜드면 믿을 만하지 않을까 싶었죠.
심지어 주변에서 "VIC은 베트남의 삼성 같은 존재야"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더 든든해지고, 안심이 됐어요. 친구들도 "베트남에서 VIC만큼 안전한 투자는 없다"라며 자신 있게 말하곤 했습니다. 현지인들의 확신에 찬 태도를 보면서 더욱 믿음이 생겼죠.
처음엔 수익도 꽤 났어요. 매일 아침 주가를 확인하면서 상승 그래프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역시 내 감, 틀리지 않았어!' 하고 스스로에게 괜히 뿌듯해했었죠.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 VIC 샀는데 꽤 오르고 있어"라며 은근히 자랑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VIC 계좌는 -30%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베트남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냉각되면서 VIC의 주가도 함께 하락했고,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고 있어요. 그때 수익을 봤을 때 일부라도 팔았어야 했는데,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큰 손실을 보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좋아 보이는 기업과 좋은 주식은 전혀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는 걸요. 일상에서 자주 보이는 브랜드가 반드시 좋은 투자처는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배웠습니다.
실적도, 재무도, 산업 흐름도 제대로 보지 않았어요. PER, PBR, ROE 같은 기본적인 투자 지표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브랜드'와 '주변 분위기'만 믿고 샀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무모한 결정이었어요.
그래도 이건 분명해요. VIC은 내 투자 인생의 시작점이에요. 첫 투자이자 첫 실패, 그리고 첫 교훈을 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손실 중이지만, 그 덕분에 생긴 기준도 있어요.
- 겉보기에 화려한 기업일수록, 실적을 먼저 본다
-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기 전에, 내가 직접 자료를 찾아본다
- 한때의 인기보다, 꾸준함을 더 믿는다
- 투자 결정 전에 최소 3개월의 관찰 기간을 갖는다
- 감정이 아닌 숫자로 판단하는 습관을 들인다
아직도 베트남 거리에서 Vin(빈) 브랜드를 보면 묘한 감정이 올라와요. 한때는 이 기업에 많은 투자금을 걸었던 나의 순수했던(또는 무모했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잘 되길 바라요, 진심으로. 왜냐하면... 나 아직도 VIC 주주거든요. 😅 손절하기에는 너무 많이 떨어져 버려서 그냥 장기 투자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언젠가는 회복되겠죠? 베트남 경제가 계속 성장하는 한, VIC도 다시 날개를 펼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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